대통령 눈물 흘리며 돈 빌렸던 한국…이젠 삼성 덕분에 '위풍당당'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3-02-25 20:40   수정 2023-02-25 20:41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라가 가난해서 조국을 떠나 남의 나라 땅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이곳의 외국인 근로자 중에 한국인이 가장 근면한다고 하니…"

1964년 12월10일 서독 루르지방 함보른 광산의 강당. 300여명의 파독 광부·간호사 앞에 선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문을 읽을 수 없었다. 국민의례가 끝날 무렵 곳곳에서 흐느낌이 시작됐다. 애국가가 시작되자 강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박 대통령은 즉석연설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돈 빌려줬던 독일, 이제는 한국에 부탁..."반도체 공장 꼭 지어달라"
1960년대 초 우리 정부는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많은 나라들이 고개를 저었지만, 서독은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문제는 담보였다. 서독 정부는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차관을 받았다. 이때 받은 차관은 경제개발계획의 종잣돈으로 쓰였다. 서독에서 어렵게 빌려온 자금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서독 광산의 '눈물의 연설' 이후 약 60년이 지난 2022년 11월.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다음 날인 11월5일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향했다. 이후 한국 정부·정계·경제계 관계자들이 모인 환영 리셉션에서도 독일 대통령의 관심사는 삼성전자였다고 한다. 그는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을 붙잡고 "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삼성전자 임원들이었다고 한다.

한 경제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차관을 달라'고 서독에 요청한 게 불과 60년 전"이라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 덕분에 한국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구애는 더욱 간절하다고 한다. 최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그룹 경영진들은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을 돌고 있다. 개도국 정상, 고위 관료들은 하나같이 국내 기업 경영진들의 손을 꼭 잡으며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해달라", "꼭 공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는 게 해외 유치 활동을 하고 돌아온 기업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개도국 정상들, "삼성전자 경영진 꼭 만나고 싶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에 대해 간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 동남아시아 한 국가 수반을 만난 국내 기업 고위 임원은 연신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 차원에서 시행 중인 현지 대학생 대상 정보기술(IT) 교육 활동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다.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려달라"는 것도 단골 요청 사항이라고 한다. 인권 수준이 높고 임금이 중동 국가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현지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꿈의 직장이라서다.

동유럽 국가들도 비슷하다. 지난해 서유럽을 찾은 한 국내 대기업 고위 임원 A씨는 한 동유럽 국가 총리로부터 "꼭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받았다. 저녁께 해당 국가 대사관으로 초청된 A씨는 '국빈' 대접을 받았다. 동유럽 국가 총리는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어주면 나는 가장 행복한 총리가 될 것이고 A씨도 몸담고 있는 회사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국가들은 이처럼 글로벌 기업 공장을 유치하지 못해 안달인 상황이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리스트를 만들어 제시하며 기업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반도체 불황 돌파 위해 정책적 지원 절실"
정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한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기업이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한국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뭘 해줄지'가 아니라 '뭘 받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공장이 들어선다고 하면 해당 지역에선 반대 여론부터 먼저 나오는 게 보통"이라고도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기업인들은 2~3년 만에 '속전속결' 신축이 가능한 미국은 물론 중국보다도 느리다고 말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더욱 비협조적인 상황이다. 정부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반도체지원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지원법의 국회 처리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야당은 총 4조2600억원에 달하는 세원 감소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로 꼽히는 대만 파운드리 TSMC는 본사가 있는 대만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10조원 가까운 추가 투자 계획도 내놓고 있다. 높은 수준의 정부 지원에 힘입어 충분한 투자 재원을 확보한 영향이 크다.

반도체업계에선 올해 불황을 돌파하고 기업들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기남 공학한림원 회장(삼성전자 SAIT 회장)은 지난 15일 한 심포지엄에서 "미국은 반도체 육성 예산 527억 달러 중 74%를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로 편성한다"며 "적어도 미국과 중국, 대만 등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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